고요 살이 터/책을 읽고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한명식, 청아출판사)

고요한편지 2012. 3. 9. 11:17

 


예술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제목만으로도 혹하여 손이 갈 만한 책이다. 이 책을 다 읽는 동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갈수록 오기만 생겼고, 혹시나 하여 끝까지 읽었지만 결론은 역시나였다. 나의 배경지식의 부족함과 문화에 대한 무식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읽어보지만 결론은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이 책이 너무 잘 이해되시는 분들은 꾸중하실라!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더라도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왜 나만 이해를 잘 못하는지 한번 따져보려 한다.


저자는 서문 제목을 ‘예술, 그 본질과의 조우를 위하여’라고 썼다. 예술의 본질을 말하고 싶어 쓴 책이고, 그 본질을 알아가는 데는 대략 아홉 갈래의 길을 제시할 것이란 예견이 가능했다. 작가가 미리 솔직하게 말해준 팁이 있긴 했다. 이 책이 예술의 본질에 대해 학문적인 체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실내건축학과 교수인 저자가 실내건축을 디자인하는 학생들에게 예술을 이해시키기 위해 들려준 이야기를 모아 출판한 책이라는 점이다. 코끼리보다 훨씬 덩치가 큰 예술이라는 대상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언급하겠다는 뜻이다.


첫 번째 시선 ‘동과 서’, 두 번째 시선 ‘원근법’, 세 번째 시선 ‘죽음’, 네 번째 시선 ‘진화’, 다섯 번째 시선 ‘모나드’, 여섯 번째 시선 ‘기하학’, 일곱 번째 시선 ‘미술’, 여덟 번째 시선 ‘미술’, 아홉 번째 시선 ‘조형’. 이 아홉의 순서에 경중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나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홉 중에서 다섯 번째의 ‘모나드’란 용어를 제외하면 모두 익숙한 말들이다. 모나드는 ‘넓이나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로서 모든 존재의 기초’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저자의 설명이 복잡했지만 대체로 플라톤의 이데아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고 이해했다.


첫 번째 시선으로 제시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이해해야 예술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굳이 동양과 서양이 아니더라도 남과 여, 옛사람과 현대인 등 그 차이는 항상 존재해 왔다. 그것을 수긍해야 대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30쪽의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실험이야기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로 좋았다. 코르크를 이용하여 만든 피라미드 모형을 ‘닥스’라면서 보여주고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피라미드 모형과 코르크로 만들었지만 피라미드처럼 보이지 않는 물건을 미국인과 일본인에게 보여주며 ‘닥스’를 고르게 하는 실험이었다. 미국인은 모양을, 일본인들은 재료를 본질로 파악했다는 이야기다.


다음 시선으로 ‘원근법’을 제시했다. 15세기 이전의 그림에서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만 제대로 그려내면 되었는데, 예를 들어 ‘인간의 타락’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그림이라면 나무 아래 아담과 이브와 뱀과 사과만 그려져 있으면 되었는데 1400년대에 들어서면서 원근법을 사용하여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르네상스는 과학의 시대이다. 특별한 개념이 없던 예술들에 과학 개념이 도입되면서 이론이 만들어졌고 예술 활동은 그 이론에 맞추어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저자가 ‘시각의 이성화’라고 거창하게 표현한 이 원근법이 회화 예술을 이해할 때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다. 또한 오늘날에는 원근법 못지않게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셋째 시선으로 ‘죽음’을 제시하였다.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미술은 물론이고 문학, 음악, 영화는 물론 패션 등 모든 예술의 중요 주제가 되어왔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죽음을 공포로 여기면서도 늘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많은 예술 작품 속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의 코드가 들어있다고 했다. 마카브르라 칭하는 죽음의 공포는 고딕이라는 건축양식에도 드라큐라와 같은 문학작품에도 마릴린 맨슨의 노래에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영화에도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이 입고 다니는 의상에도 빠짐없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술을 보는 시선에 죽음이라는 시선을 포함시켜 놓아야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넷째 시선으로 ‘진화’를 들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꼭지에서처럼 진화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대상인 예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저자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잘 이해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책도 설명을 해주면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의 근본문제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설명하여 독자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선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두고 저자의 글쓰기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싶다.


나는 독서, 토론,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할 때면 대략 다음의 요지로 설명해 왔다. 책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으면 토론을 할 때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자꾸 말하고 싶어지며, 간혹 다른 사람이 잘 못 말하고 있으면 그 말을 끊고서라도 상대의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싶어진다고. 그리고 그렇게 말한 것을 그대로 적어놓으면 좋은 글이 된다고 말이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잘 못된 말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견해를 조금 수정해야만 할 것 같다. 말로 표현하는 방법과 글로 표현하는 방법에는 그것들이 가진 특성만큼 차이가 있음을 간과한 것 같다. 말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표현의 세밀함을 살피기 어렵지만 글은 써놓고 나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정해지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특히 단락 하나를 만들 때마다 주제와 유기적인 연결을 고려해야 하고, 한 단락을 읽으면 그것이 주제를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게 써야 한다. 한 마디로 단락 하나 하나를 허투로 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저자의 수많은 생각을 욕심나는 대로 적은 단락만 나열되면 독자의 글 읽기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되고 만다. 강연이나 강의, 토크쇼에서 빛을 발하는 명강사들이여! 글쓰기도 좀 배워서 책을 써 주시기 바란다. 독자는 피곤하다! 힘들다!

(2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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